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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 “목사에겐 앓아야 할 병이 있습니다”
5월 첫째 주일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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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디엔 기자 작성일21-05-1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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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게 울지 않으면 / 너도 그저 / 한 마리의 새에 지나지 않는다 / 그토록 구슬프게 울지 않으면 / 너도 그저 / 여느 한 마리의 새에 지나지 않는다 / 그래 /울음을 터뜨려 / 밤을 밝히거라 / 울음을 터뜨려 / 아침을 맞이하거라 / 차라리 밤엔 / 웃는 자보다 / 우는 자가 복이 있나니 / 우는 자에게 / 숨은 별들이 / 얼굴을 내밀며 총총히 내려오고 / 울음을 터뜨린 자에게 / 환희의 불새가 / 먼 곳에서 숨 가쁘게 날아오나니...” 

이것은 제가 쓴 ‘갈릴리여, 첫사랑의 추억이여’라는 시집에 나오는 시입니다. 

지난주 수요일 저녁예배 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밤늦게 서재 창문을 여니 소쩍새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날따라 소쩍새 울음소리가 깊은 의미로 들려왔습니다. 실존주의 문학자인 우나모노 교수는 인간이란 사람이기에 반드시 앓아야 할 병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병은 영원한 생을 갈구하는 소망이요 진실하기 위해 몸져눕는 병이고 자기실현을 위해 애써 몸부림치는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혼돈 속에서 아파하는 것, 자기 필요와 욕구만을 위해 아파하고 슬퍼하는 것, 자존감과 자괴감 속에서 방황하는 고민 같은 것은 이런 류의 병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병은 오직 참과 진리를 위해 혹은 진정한 자기실현을 위해 드리고 영혼을 위해 슬퍼하고 아파하는 것입니다. 진실을 위해 아파하는 모습, 참과 진리를 위해 고통 하는 몸부림, 참된 자아실현과 영원한 삶의 세계를 목말라하며 버둥대는 모습... 이런 것들이 사람이기에 앓아야 할 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기에 앓아야 할 병도 있을 것이 아닙니까? 아니, 목사이기에 앓아야 하는 병이 있을 것입니다. 나를 비우고 내 안에 그리스도를 채우기 위한 몸부림,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며 살아가려는 삶,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내 생각을 포기하고 내가 싫어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섬기고 포용하고 인정하는 삶, 사일로 이펙트(조직, 집단 이기주의), 자기 공동체의 한계성을 초월하려고 몸부림치는 삶이 아닐까요. 아니, 다른 사람을 위해 아파하고 울며 몸부림치는 것들이 목사이기에 앓아야 할 병일 것입니다. 이 병을 앓지 않으면 욕망의 성이나 자기 편견의 성에 갇혀 살고 신념의 높은 바벨탑을 쌓을 수 있습니다. 남의 부족함을 위해 결코 울고 통곡하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제 주변에는 총신 재단이사와 관련하여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 부류는 “소 목사가 총회장으로서 과도기에 재단이사장을 반드시 맡아야 하는데 어떤 경우에도 투표는 하지 말고 합의추대로 가야 합니다”라는 부류와 또 한 부류는 “합의추대가 안 되면 무조건 투표를 통해서라도 재단 이사장이 되어 총신을 살리고 세워야 한다”는 강행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을 설득해 왔습니다. 투표에서 이긴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제가 어떻게 대립구도에서 총신을 살리고 세울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날 저녁 소쩍새 울음소리는 저의 가슴 속에 큰 파문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 밤, 저를 가장 극단적으로 충동하시는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간절히 사정을 했습니다. “목사님, 아니, 형님 목사님, 저를 사랑하고 기대하고 응원하는 건 좋지만 이제 저에게 좀 자유를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가 괴로워 죽을 지경입니다. 이러한 대결구도 상황에서 제가 무엇을 얻으라는 말입니까? 어떻게 총신을 이끌어가고 세울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이 일이 아니래도 앞으로 10년 이상을 교단과 한국교회를 섬겨야 할 사람입니다.” 이런 말을 하자 얼마나 눈물이 쏟아져버리는지 저도 모르게 그냥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울음에 막혀 더 이상 말을 하지를 못했습니다. 저의 통곡하는 울음에 그 분도 더 이상 우기지를 못했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다음날부터 그 분이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설득해 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이튿날 총신재단 이사장 후보를 사퇴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어쩐지 슬픈 마음도 들었고 동시에 몸과 영혼이 얼마나 가볍든지 하늘로 날아가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이미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또 한 번 읽어보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목요일 밤은 구름 사이사이로 몇 개의 별이 반짝였습니다. 구름사이의 별들처럼 내 양심도 저렇게 반짝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교회 뒷산에서 소쩍새는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구슬프게 울어대고 있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 아파하는 고통을 넘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까지 울고 보듬어주는 지도자의 병을 더 앓아야 한다는 시그널로 들립니다. 하긴, 이 소쩍새의 시그널을 받기 전에도 금번 우리 교단 목사장로기도회의 주제를 ‘울게 하소서’라고 정했던 것이지만요. 

저는 저 자신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 목사여, 지도자여. 나와 그대가 앓아야 할 때론 슬프고 때론 기쁜 거룩한 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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