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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 율법을 창조적으로 재정형(再定型)하신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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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디엔 기자 작성일22-07-30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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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예수 논구 시리즈> 2022.7.13.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 명예교수) 

나사렛 예수가 가르치신 계명은 모세의 율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었다. 그것은 율법 정신을 활성화 시키는 것이었다. 예수의 새 계명은 모세 율법에 대한 창조적 수정(修訂)이었다. 이것은 모세 율법의 폐기가 아니라 율법의 완성이었다. 모세가 준 율법은 무효화 되지 않고 예수께서 주신 사랑의 새 계명 안에서 완성된다. 사랑의 계명 안에서 율법의 요구는 충족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성경을 폐기하지 않았다. 2세기 초대교회 안에서 마르시온(Marcion)이라는 이단(異端)이 일어나 구약성경을 폐기하고자 했을 때 공()교회 회의는 A.D. 144년에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구약의 율법서와 예언서를 신약과 동일한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경전으로 받아들였다. 그 후로 오늘까지 그리스도인들은 구약과 신약을 경전(經典)으로 받아 들이고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고 있다.

I. 예수가 선포한 윤리의 새 형식

 

예수는 구약 율법의 요구를 행위자의 내적 동기에 적용함으로써 율법의 요구들을 동기(動機)의 측면에서 극단화 한다. 예수는 구약 율법의 요구를 그 자신의 인격에 기초하여 재정형(再定型)함으로써 율법 해석에 신선함과 독특성을 부여하였다. 예수 교훈의 새로운 형식은 “...라고 너희는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이다. 예수는 사람이 그의 말씀을 경청하고 말씀을 실천함으로써만 삶에 대한 확실한 기초를 놓을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이러한 예수의 윤리적 교훈의 새 형식은 모세의 권위를 수정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당시 율법학자나 서기관 등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의 견지에서는 자기들의 전통 규례(規例)와 유전(遺傳)에 도전하는 종교적 위법행위였다. 그러므로 이들은 예수를 위험인물로 보았고, 예수를 제거할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던 것이다. 예수 교훈의 새로운 형식은 그 자신이 지니신 메시아적 권위를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나사렛 예수의 윤리적 새 형식 선언은 유대교의 전통이나 초대교회의 전통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그만의 독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모세의 율법 시대와 선지자의 예언 시대가 가고 하나님 은혜의 복음 시대가 온 것이다

 

예수는 율법을 해석함에 있어서 당시 유대교 랍비 전통의 해석절차를 따르지 않았다. 전통 규례는 구전(口傳)에 의하여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면서 계명이 주어진 본래 의도가 애매모호해지거나 왜곡되었다. 이것들은 장로들이 인위적으로 세운 유전(遺傳)과 규례였다. 그래서 예수는 랍비들의 전통 규례를 무시하였다. 예수는 계명의 해석에 있어서 유대교 장로들의 전통에 반()하여 계명의 본래 의도로 되돌아 갔다. 장로들의 전통은 고대 성문법을 현재의 상황에 적용하기 위하여 고안되었다. 예컨대, 십계명의 넷째 계명은 안식일에 일하는 것을 금한다. 그러면 무엇이 일인지 일이 아닌지를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적용과 해석은 누적되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으며, 그것 자체가 하나의 법문서(a law-code)가 되어 버렸다. 구전(口傳)법은 문서(文書)법에 우선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랍비의 법체계는 너무 외형적인 형식에 치우쳤다. 이에 대하여 예수는 계명이란 그 본래적인 목적이 충족될 때 계명은 바르게 지켜진다고 가르쳤다. 예수의 새 계명은 율법의 내면적 정신을 살리는 것이었다.

 

II. 계명의 본래적 의도를 역동화

 

예수는 힐렐(Hilel)학파의 율법 해석이 토라의 정신에 부합한다고 보았다. 그는 삼마이(Shammai)학파가 주장한 율법의 외형적 엄격한 준수에 대하여 비판하면서 율법의 정신을 강조하였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23:23).

 

토라는 일련의 절대적인 신의 명령이다. 명령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행위의 범위는 아주 넓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은 오히려 적다. 나머지는 주해이기보다는 금령이다. 할례로부터 식사에 관한 제한까지, 혹은 접촉과 정결에 관한 규제에 이르기까지, ‘나머지 모든 것은 주해이기는 커녕, 매우 오랜 예전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금령이다. 이는 경건한 유대인과 다른 인간 사이를 크게 가로막는 벽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유대교의 보편화를 가로막고 있는 것일뿐더러, 유대인 하나 하나가 이 종교를 실천하기조차 곤란하게 만드는 커다란 장애였다. 유연한 율법 해석가 힐렐(Hilel)은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에게 토라를 어떻게 배워야 하는 지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다음 같이 대답해 주었을 것이다: “당신이 싫어하는 바를 이웃에게 행하지 말라. 이것이 완전한 율법이다. 나머지는 그에 대한 주석이니 가서 그것을 공부하라.” 예수는 복음전파를 통해서 힐렐의 경구(警句)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으로 전환시켰다. 그러면서 예수는 율법으로부터 도덕적 윤리적 측면 이외의 요소 모두를 제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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