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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 예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윤리(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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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디엔 기자 작성일22-06-3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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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예수 연구 시리즈>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 상임대표/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III. 잠정적 윤리가 아닌 항구적 윤리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가 산상설교에서 가르친 윤리는 이 세상의 종말이 오기전까지 신자들이 행할 잠정적인 삶의 규범을 가르쳤다고 본다. 이들은 예수가 가르친 윤리는 하나님 나라의 항구적 윤리가 아니라 중간시기의 윤리였다고 본다. 이 윤리는 이 세상의 종말이 오기 전에 신자들이 잠정적으로 행해야할 삶의 지침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윤리는 영구적으로 타당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종말이 오기 전 까지 한시적으로 통용되는 일시적인 타당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윤리를 잠정(暫定) 윤리(an interim ethics)라고 칭한다. 잠정 윤리는 임박한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춘 철저한 종말론에 입각한 중간기의 윤리이다. 산상설교의 윤리란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는 짧은 현세에서 지켜나가야 할 임시적 윤리라는 것이다. 세상 종말을 기대하는 자들을 위한 일종의 비상조치 윤리다. 여기서 윤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시적이고 부수적인 역할을 할 뿐이다.

 

슈바이처는 다가오는 미래적 하나님 나라를 묵시록적으로 이해했으나 그것은 실재적으로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라기보다는 후기 유대교의 묵시록에 영향을 받은 신화론적 나라라고 보았다. 실제로는 역사의 종말이 없고, 도래하지 않는 종말에 앞서 예수가 짧은 막간(brief interval)에서 실천을 제시하는 중간기 윤리는 어느 누구도 진지하게 실천할 필요가 없는 윤리라는 것이다. 슈바이처는 이러한 신화론적 나라를 선포한 역사적 예수는 그가 살았던 시대와는 전혀 동떨어진 고상한 망상(妄想)”(a noble delusion)에 사로 잡힌 자라고 보았다. 슈바이처가 신약성경 연구에서 발견한 역사적 예수는 슈바이처 자신이 살았던 19세기의 계몽주의적 세계관과는 전혀 생소한 신화론적 세계상에 갇힌 자였다.

 

그러나 이 윤리적 주제에 대한 슈바이처 입장의 역설이 있다. 신약 신학자로서 슈바이처는 중간기 윤리가 종말론적 망상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런데 의료 선교사로서 슈바이처는 신학, 의학, 음악에 있어서 문명사회에서 직업적 출세의 전망을 포기하고 서아프리카의 렘바르네에 가서 흑인들에게 봉사하는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그 동기는 그가 해석한 중간기 윤리였다고 말할 수 있다. 슈바이처는 신학적으로 종말론적 환상(幻想)에 불과하다고 여긴 예수의 윤리를 선교사로서는 실천했던 것이다. 여기에 슈바이처 삶의 역설이 있다.

 

그러나 저자의 견해에 의하면 산상설교의 윤리는 이 세상에서는 지킬 수 없고 천국에서만 지킬 수 있는 윤리이다. 이것은 슈바이처가 해석하는 바 세상 끝날이 오기 전까지 임시적으로 지키는 "중간기의 윤리" 내지 잠정 윤리”(interim ethics)가 아니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가 가르친 것은 중간기의 임시적 윤리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윤리요 그것은 항구적인 사랑의 윤리이다. 슈바이처가 예수께서 전파하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환상(幻想, illusion)으로 본 것은 복음서를 전혀 성경적 세계상이 아닌 현대의 실증주의(實證主義)적 세계관에서 해석했기 때문이다. 슈바이처는 예수가 행한 종말에 관한 설교란 철저적 종말론”(consistent eschatology)이라고 해석한다. 그는 예수의 세계관이 이 세상을 멸망할 도성처럼 보는 후기 유대교의 묵시록적 세계관에 포로되었다고 보았다. 이러한 슈바이처의 해석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바른 이해가 아니다. 이것은 예수 선포의 비종말론화요, 예수 선포의 비신화론적 해석으로서 사복음서가 한결같이 증언해주는 실제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윤리를 가르치고 살았던 지상적(地上的) 예수의 설교와 윤리를 왜곡하는 것이다. 예수의 윤리는 하나님 나라 시민의 헌장으로서 오늘날에도 타당한 하나님 나라의 윤리이다.

 

IV. 종말론적 윤리

 

저자의 견해에 의하면 사복음서가 전해주는 역사적 예수는 신화가 아닌 구속사적 세상 이해 속에서 살았고 역사 속에서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선포했다. 이 윤리는 예수의 산상설교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산상설교의 윤리는 그의 인격 안에 이미 다가온 하나님 나라의 윤리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종말론적 윤리(eschatological ethics)이다. 이러한 윤리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지킬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윤리가 전혀 이 세상에서 실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는 지킬 수 있다. 산상설교의 윤리는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특별한 경우에는 역사 속에서 실현되기도 한다.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에게 특별한 사랑의 은혜가 주어질 때 종말론적 윤리는 가능하다. 한국교회 안에서 우리는 손양원 목사의 경우 이러한 원수 사랑의 계명이 실천된 것을 볼 수 있다. 여수반란 사태 시 손 목사의 두 아들이 공산당 청년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였다. 살해범이 경찰에 붙들여 처형당하게 되었을 때에 손 목사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그의 석방을 탄원하고 석방된 청년을 자기 수양 아들로 삼는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손양원 목사가 실천한 하나님 나라의 윤리이다. 교회사적으로는 중세의 성 프랜시스, 19세기 나병환자의 목자 성 다미엔, 현대에 와서는 테레사 수녀 등이 이러한 사랑의 윤리를 실천한 신자들이다. 역사과정에 있어서 산상 설교의 윤리는 온전한 모습은 아니나 파편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 가운데 파편적으로 실현된다.

 

보통 신자들은 손양원 목사, 성 프랜시스나 성 다미엔이나 테레사 수녀처럼 살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안에서만 이러한 성화의 삶은 가능하다. 이러한 경우는 부자 청년에게 극단한 요구를 하신 예수의 가르침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부자청년이 예수에게 나아와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였다. 이에 예수는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라고 대답하신다. 이에 청년은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데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라고 대답한다. 이에 예수는 말씀하신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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